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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말하는 'AT 필드'와 인간의 불완전함

2020-02-23

[챕터69 권승원 기자]

1995년 10월 TV도쿄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등장과 함께 작품이 가진 심오한 메세지와 애니메이션 자체의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거대한 신드롬을 만든 바 있다. 특히 에반게리온은 작품이 갖는 유일하고 독특한 세계관으로 일본과 전세계에 강력한 팬덤을 양산해냈다. 그 파급력은 현재까지도 '오타쿠'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에반게리온 오타쿠를 가장 많이 떠올릴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듯 에반게리온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시간이 지나도 계속 곱씹게 되는 작품으로 남은 이유는 아름다운 미장센과 메카닉 디자인 등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한 가지 요소는 작품이 담은 철학적 세계관과 스토리 서사이다.


우선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이 제작된 시점의 일본 사회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당시 일본은 80년대 말 발생한 일본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해 극도로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는 가족 공동체 해체로 인한 청년들의 정서적 불안정함으로 이어졌으며 버블 경제의 붕괴로 극심한 취업난이 더해지며 청년들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기가 닥쳤던 것이다. 즉, 에반게리온은 청년들이 극도의 정서적 불안정함을 느끼는 암울한 사회 속에 탄생한 작품으로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1999년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언이 존재했던 세기말이라는 시기에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나 '차라리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와 같이 종말을 바라는 청년들의 우울한 심정이 에반게리온의 세계관 속에 그대로 녹아든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종말로 달려가는 미래를 그려냈다. 성경이 서술하고 있는 최초의 인류 '아담'과 원죄의 개념을 고스란히 작품의 세계관 속에 차용한 에반게리온은 유한한 인간의 생명과 고독으로 대표되는 불완전함, 그리고 그것을 끝낼 수 있는 수단인 '인류보완계획'의 개념을 도입하며 깊고 심오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가지고 있는 심오한 메세지들과 여러 사건들, 여러 개념들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철학적이기에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AT 필드는 작품 초반, 인류와 아담의 후손인 사도들이 전쟁을 치루는 가운데 등장한 방어막의 개념이다. 인류는 현대무기로 사도를 공격하지만 AT 필드를 가동하는 사도들에게는 어떠한 무기도 통하지 않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렇듯 물리적 방어막의 개념인줄로만 알았던 AT 필드는 작품의 후반부 모든 인간의 내면의 있는 마음의 벽임이 드러난다. 쉽게 말해 AT 필드란 것은 한 인간이 자신만의 자아를 타인으로부터 온전히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자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벽인 것이다. 이 AT 필드는 타인과 나를 구분지어 한 인간의 자아 형성을 가능케 함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타인과의 명확한 구분, 타인이 침범할 수 있는 자아의 영역은 그 어떤 누구도 타인의 자아를 100% 이해할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말하는 인간의 고독과 그로인한 불안정성이 성립된다. 인간은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고독의 무게감을 유한한 생명과 함께 평생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사실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강조한 것이다. 


전문용어처럼 들리는 AT 필드라는 개념을 판타지적 요소에 맞게 차용했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사회 속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을 정확하게 그려낸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정신과 자아는 우리 모두를 우리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게 해주지만 이런 주체성과 개별성의 축복은 결국 감당하기 힘든 고독의 고통으로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돌아오기도 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혼자가 좋지만 온전히 혼자인 것은 싫다'라는 아이러니가 이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강조하며 자신의 자아를 지키고 발전시키길 원하면서도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이런 상황이 '혼자이고 싶지만 온전히 혼자인 것은 싫다'라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어렵고 철학적인 개념을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AT 필드를 통해 설명했으며, 또한 인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고독으로 점철된 불완전함을 끊어버리기 위해 종말을 뜻하는 인류보완계획을 실행함으로 모든 것을 끝내버릴 것인가" 혹은 "평생 고독이라는 무거운 짐을 유한한 시간 속에서 짊어지고 갈지라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최대한 이해하고 사랑하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말이다. 

또한 작품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카리 신지는 당시 일본 사회 속 가족과의 불화 그리고 바닥을 치는 자존감에 따라 현실세계와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일본 젊은이들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후반부 성장한 신지가 "나는 나야", "나는 나 자신이고 싶어"라는 고백을 남기는 것은 결국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세상에 말하고 싶은 궁극의 메시지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은 고독과 이 고독을 대해왔던 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더욱 힘겨웠던 현실이 나를 마주하고 있을지라도 결국 자기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고 현실세계로 나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지의 고백은 고독이라는 고통으로 인해 더욱 자신의 삶을 부정하거나 혹은 극단적인 선택을 바라는 이들에게 자신을 긍정하고 현실세계로 나올 것을 독려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메시지인 것이다. 결국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AT 필드로 묘사된 고독과 이로 인한 인간의 불완전함을 그려냈음에도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그 불완전함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인류보완'임을 나타낸 것처럼 보인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처럼 개개인의 차이로 인한 서로 간 인지부조화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아의 발현으로 인한 개개인의 차이와 갈등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임을 인지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서로 간 이해할 수 없는 영역, 무엇보다 내가 타인을 100% 이해할 수도 또는 내가 타인에게 100% 이해받을 수 없음에 좌절하지 않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저 사람은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또는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요" 등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인간이란 원래 그런거야"의 이야기는 매우 진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문구 속 숨은 의미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하고 결국 숨은 의미를 깨닫는 다면 큰 위로가 전해질 것만 같다. 


결국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인간인 우리가 가진 불완전함을 극단적인 세계관 속에 그려냈음에도 불완전함을 조금이라도 채우기 위해 상호 간 이해를 위한 소통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권승원 / hank@graviteraconsulting.com